로맨스야설

프로젝트 X - 14부

본문

숙은 출국을 앞두고 옷가지들을 챙겼다. 나도 양복 한 벌은 입은 채로 하고 열흘 정도 묵을 수 있는 속옷들을 정리하여 여행용 가방에 차곡차곡 넣었다. 몇일 전부터 준비를 해 왔는지 숙은 여행 스케쥴과 예약된 호텔 전화 번호등을 넘겨주며 상당히 들뜬 표정을 짓는다.




사무실에는 미국쪽 연구원들과 협의할 일이 많아서 출장을 다녀와야겠다고 얘길했지만 탁과장에게는 아무래도 미국에 가 있는 동안 황교수와 비밀 결혼식을 해야할 것 같다고 넌지시 말을 건네놨다. 시간이 괜찮다면 핸드폰으로 장소를 알려 줄테니 삼일 정도 휴가를 내서 내 곁으로 달려오도록 준비 시켰다.




비행기 탑승 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담배 한보루와 양주 한병을 샀다. 여행하는 동안 한국 음식이 먹고 싶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을 하기에 포장된 김치도 챙겼다. 비행기 속에서 아는 얼굴이라도 있으면 번거로울까봐 유에이를 택했지만 생각보다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엥커리지에서 잠시 휴식하며 북극의 밤하늘을 바라본다. 서울도 이젠 혹한기에 접어 들겠지만 북극의 밤하늘은 더욱 맑아 보였다. 별이 총총하게 박혀 있었다. 오로라가 멋지게 밤 하늘을 가로질러 갔으면 하는 엉뚱한 기대를 해 봤지만 하늘은 무덤덤한 채로 작은 별빛만 품고 있었다.




낮 시간에 도착한 뉴욕도 차가운 겨울 냄새를 풍겼다. 미리 예약된 호텔에 가기 위해 리무진을 탔다. 낯설기만 한 거리를 익혀보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창 밖을 내다 봤지만 쏟아지는 잠에 몇 번이나 앞좌석에 머리를 박아야 했다. 숙이 흔들어 깨우지만 않았다면 잠결에 버스노선을 온통 돌아다녀야 할 뻔했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난 곳에 있는 호텔 로비에 도착한 우리는 가방을 받아주는 포터에게 짐을 맡기고 카운터로 향했다. 예약 명단을 확인하는 동안 로비에 마련된 쇼파에 앉아 길게 담배를 피워문다. 바쁘게 살았던 날들. 그 속에서 무의미하게 던졌던 말들. 예전에 길 바닥에 쏟아 버렸던 숱한 무심함들이 숙을 만난 이후로는 하나도 빠짐없이 실현되고 있다. 꿈 속에 묻혀 버렸을 많은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상대적으로 나는 또 다른 꿈 속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른다. 미국 여행 쯤이야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비밀결혼을 위해 미국에 오게 될 것은 상상 속에서도 없었지만.




방이 배정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곳에 포터가 먼저 문을 열고 짐을 내리고 있었다. 일달러를 찔러 주니 그는 몇 번이나 감사의 표시를 한다. 내겐 겨우 1,440원에 불과한 일달러로 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시스템이 맘에 들었다. 더블침대와 싱글침대가 놓여 있는 방은 정갈하여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부드러운 곡선으로 샤워실과 욕조가 있다. 전기와 텔레비전은 물론 음악까지 조작할 수 있는 조정기가 침대와 쇼파 위에 각각 놓여 있었다. 




숙은 구겨질 수 있는 옷가지를 먼저 꺼내 옷장에 넣었다. 나는 양복을 걸친 상태라서 굳이 가방에서 꺼낼 것도 없었으므로 숙의 옷가지를 꺼내주며 잠시 짐 정리를 도왔다.




“버팔로에는 비행기로 갈까 차로 갈까?”


“응, 비행기로 가요.”


“차가 낫지 않겠어? 쉬엄 쉬엄 주변도 돌아보면서 말야.”


“어휴, 누가 운전한다고 그래?”


“운전할 사람을 고용하면 되잖아.”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없어. 랜탈하는 곳에다 물어보지 뭐.”


“차로 가면 몇시간 걸리는데?”


“비행기로 가면 두시간도 안걸리는데 차를 몰고 가면 열댓시간 걸릴꺼야.”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긴 해도 여행 기분은 만땅 이잖아.”


“좋아. 당신 맘대로 해.”




나는 랜탈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일 새벽부터 일주일 정도 함께 여행할 수 있는 기사를 포함하여 보내 달라고 했다. 장거리 운행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서 곧 연락하겠다며 랜탈 회사와 통화를 끝냈다.




“숙아, 마침 장기랜탈에 서비스까지 하는 경우가 있나봐. 잠시 후 연락 준다니까 기다려보자구.”


“그냥 비행기루 옮기는게 돈이 덜 들지 않겠어?”


“당근이쥐. 후루룩 다녀오는게 더 싸니까. 하지만 열흘정도 차를 몰아줄 사람만 있다면 여행도 재미있을꺼야.”


“그럼 호텔도 오늘 밤만 자면 체크아웃 해야겠네.”


“어, 그렇지. 열흘동안 발길 닿는데루 돌아다니면서 그 동네 호텔을 이용하게 될테니까 미리 체크아웃 신청해 놓자구.”


어차피 랜탈한 차로 여행을 다닌다면 호텔에 옷가지를 둔 채 움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옷가지를 정리하던 숙은 다시 걸었던 옷가지를 차곡차곡 여행용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당신은 너무 즉흥적인게 탈인거 알지?”


“줄곧 생각했던 일이야. 만약 미국에 온다면 승용차로 여행하고 싶었거든.”


“그럼 기사를 부르지 말고 당신이 직접 운전하지 그랬어?”


“길을 모르잖아. 지도 한 장만 딸랑 들고 황량한 미국 대륙을 어떻게 누비냐구.”


“주 무대를 어디루 할건데?”


“글세, 당신이 결혼식 하고 싶은 호텔이 여기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멀리 갔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여길 와야겠지.”


“그럼 짐을 갖고 다니지말고 여기에다 맡겨놔야겠네.”


“좋은 생각이야. 내가 로비에 가서 지배인과 그 문제를 상의해 볼게.”


“같이 나가요.”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은 시간이므로 로비는 한가했다. 지배인을 불러 몇일 동안 버팔로 여행을 다녀올테니 짐만 보관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배인은 몇일 후 결혼식 장소로 예약된 것만 지킬 수 있다면 편리를 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호텔을 다시 빠져 나왔다. 복잡한 거리의 풍경은 서울의 도심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분주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걷는 사람들이 서울보다 더 많았을 뿐이다. 똑같은 사람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사람들이 가득한 서울에 비해 얼굴색이 완전히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섞여있는 거리일 뿐이다.




“뭘 먹을까?”


“낯설잖아요. 그냥 호텔에서 식사하면 안될까?”


“뭘 어때서. 걷다가 배고프다 싶으면 아무데나 들어가서 요기를 하자구.”


“좋아요. 이국의 거리에서 당신과 팔짱끼고 활보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


“그렇군. 여기선 우리를 알아볼 사람이 없겠어.”


“내가 꿈꾸는 세상이에요. 적어도 당신과 나의 관계를 의심할 어떤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땅을 원했으니까요.”


“그랬지. 이젠 당신의 유일한 남자로써 당신의 뜻에 따라 살아갈게.”


“피~, 여기서만 그럴꺼면서.”


“그래. 죽을 때까지 여기서 살아 버릴까?”


“불법채류자로?”


“컥. 그렇군.”


“당신의 로봇프로젝트는 미국 땅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 같아요.


어쩌면 살고 싶지 않아도 이 땅에서 붙박이처럼 살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 생각도 그래. 정부나 개인투자가들은 로봇프로젝트를 이해할 수 없을꺼야. 그들이 외면해 버리면 외로워서라도 어딘가 기대야되겠지. 미국은 기회의 땅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야할 땅이기도 하지.”


“전 당신의 프로젝트가 완벽하게 성공하도록 도와줄 수는 없을꺼에요. 제가 할 일은 처음 일이 시작되도록 돕는 것이 고작이겠죠. 그러니까 당신도 연구에만 몰두하지 말고 전세계를 상대로 투자자를 모집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아요.”


“알고 있어. 그저께 친구 만나서 실망을 좀 했었지. 하지만 노력은 해 볼꺼야.”


“우리 저쪽 차이나타운에 가볼래요?”


“겁나는데?”


“뭐가?”


“영화에서 보니까 맨날 총질하는 곳으로 묘사 되어있었거든.


혹시 총알 날라오면 피할 방법이 없잖아. 우린..“


“피, 설마 밥먹다 총알 먹을라구요.”


“좋아. 한번 가보자.”




숙과 나는 호텔에서 점점 멀리 걷고 있었다. 차이나타운에 들어 섰을 때는 조명등이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머리 위에 둔 채 딱히 어떤 집에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 보다는 걷는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김박사님.”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김박사가 무슨 소리야? 닥터 김?”


“글세, 누가 당신을 알아 본거야?”


“몰라. 미국에 온걸 아는 사람이 없을텐데.”


“정말 낯선 말이다. 김박사가 무슨 뜻이지?”


숙과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중년의 남자가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눌러쓰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


“어딜 가십니까?”


“당신 한국사람?”


“맞습니다. 김박사님을 뵙고 싶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에 올걸 어떻게 알고 기다렸지요?”


“정보통이 있습니다. 김박사님의 움직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정도의...”


“무슨 일로 나를 찾지요?”


“가시죠. 저녁시간이니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숙과 나는 잠시 망설인 끝에 중년의 남자를 따라 가기로 했다. 어차피 낯선 곳에서 악의적이었다면 먼저 총알을 날려 보냈을텐데 정중히 모시겠다는 그의 의도로 볼 때 결코 해로운 일만 상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안내된 장소에는 중국 요리 전문점이었다. 원형 탁자에 한 사람이 먼저 앉아 있다. 그는 우리가 들어서자 일어나 포권하듯 인사하며 정중히 맞아 들였다. 탁자에 준비된 물잔에 따뜻한 물이 부어졌다. 손짓으로 안내하는 방향을 향해 숙과 나는 의자에 앉았다. 따뜻한 물잔을 두 손으로 잡으며 입술에 대 본다. 따뜻한 물줄기가 목젖을 따라 흘러 내렸다.




“누구시죠?”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희는 중국 우정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정보통신부 쯤으로 생각하면 될것입니다.”


“무슨일로 저를 보려는 것이죠?”


“찬찬히 음식을 드시면서 얘길 해도 늦지 않습니다.”




원형 탁자에 먹음 직한 음식이 가득 채워졌다. 숙과 나는 풍성한 음식 앞에 힘없이 무너지듯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음식을 맛있게 먹어댔다. 우리의 식성을 지켜보던 그들도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음식을 비워 나갔다. 




“음식은 맘에 드십니까?”


“훌륭합니다. 중국요리를 많이 먹어봤지만 정통 요리를 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일 아침 호텔로 찾아갈 계획이었습니다만 새벽에 버팔로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급히 모시게 됐습니다.”


“아니, 우리가 버팔로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여기서 조금 전에 계획한 일인데 어떻게 알았죠?”


“저희가 맘만 먹으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럼 호텔 전화를 감청했단 말입니까?”


“묻지 마십시오. 중요한 일이라서 실례를 무릎쓰고 행한 것입니다.”


“뭐가 중요해서 사생활을 감청합니까?”


“지난번 설계를 끝낸 로봇프로젝트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뭐요? 내가 로봇프로젝트를 했었다구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김박사님의 설계도 전체를 검토했습니다.”


“말이 됩니까? 아직 아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는 설계도가 왜 그대들 손에 있다는거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이미 다 알아냈으면서 뭐가 또 궁금하다는거요?”


“왜 메인컨트롤러는 한 개밖에 설계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내 맘이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들 생각엔 적어도 메인컨트롤러로 사용하려면 병렬로 열 개 정도 연결되야 작동한다고 판단했었는데, 김박사님의 설계도를 보면 한 개로 작동 시킵니다.”


“거참, 한 개를 쓰던 백개를 쓰던 그것은 내 몫인데 왜 따집니까?”


“솔직히 말씀하시죠. 김박사님은 설계도가 유출될 것을 이미 염두에 둔 것으로 압니다.”


“그래요. 맞는 말이요. 돈에 굶주린 사람들이 당신들과 같은 무리에게 정보를 유출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 그래서 내가 메인컨트롤러 설계를 미뤘던거요.”


“저희와 손 잡고 나머지 메인컨트롤러 설계를 마칠 수는 없습니까?”


“내게 득되는게 뭐 있어요? 어차피 당신들은 내 허락을 받지 않고 로봇프로젝트 전체를 훔쳐간 마당에...”


“진수를 알려 주십시오. 저희는 거대한 자금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김박사님이 원한다면 평생 먹고 살만큼 지원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요. 나도 돈이 궁한판에 메인컨트롤러 설계도나 팔아 먹을까?”


“저희에게 넘겨 주십시오. 저희는 박사님의 꿈을 실현시킬 힘이 있습니다.”


“좀 생각해 봅시다. 지금까지 설계된 것 만으로도 로봇을 만드는데는 큰 무리가 없는데 굳이 머리통을 더 보완해 달라는 당신들의 의도를 모르겠소.”


“저희가 확보한 설계도는 단지 로봇의 각 기관들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초기 단계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박사님이 염두에 둔 생각하는 휴먼로봇을 위해서는 나머지 설계도를 주셔야만 합니다.”


“내 머리 속에 있소. 난 한국에 돌아가서 나머지를 설계할꺼요. 그러면 당신들이 포섭한 그 인간에게 나머지 자료도 넘겨 달라고 협박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꺼요.”


“그렇지 않습니다. 박사님은 이미 이런 일을 예측하고 있었으므로 어떤 누구도 나머지 설계도를 얻어내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미국 땅까지 쫒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나에게 시간을 주시오.”


“어떤 시간이 필요하지요?”


“한국 정부와 먼저 협상을 하리다. 그들이 내 설계를 이해하고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그냥 물러서시오. 만에 하나라도 한국 정부가 로봇프로젝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꺼이 당신들에게 내 모든 것을 주리다.”


“안돼요. 저들은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남의 것을 거저 먹으려는 무리들이에요.”


침묵을 지키던 숙이 갑자기 끼어들며 절규하듯 두 사람간의 대화를 말렸다.


“어쩔 수가 없소. 난 한국이라는 작은 틀에 얽메이고 싶지 않거든. 누구라도 내 연구 결과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인류를 위해서라도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넘겨줘야 하오.”


“아니에요. 당신의 능력을 분명히 정부에서 인정할꺼에요. 아직 포기하지 말아요.”


“흥분하지마. 내가 모든 것을 넘긴 것도 아니잖아. 내부의 적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뻐팅기는 것 보다 멋진 일 아냐?”


“좋습니다. 그럼 즐거운 여행이 되십시오. 저희의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당장엔 도둑질 같지만 먼 훗날에는 인류를 위한 부득이한 선택을 했다고 당신들은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의 국력은 날로 신장하여 빠른 시간내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과 힘을 갖춘 진정한 브라더가 될 것입니다. 그 날을 위해 저희 정보원들은 전세계에서 쉬지 않고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물어 봅시다.”


“말씀하시죠.”


“어차피 내 연구원들 중에 당신들이 심어놓은 정보원이 있다는 얘긴데 구체적으로 누구요?”


“안됩니다. 밝힐 수 없습니다.”


“모두 다 해고하면 됩니까?”


“그런 방법이면 몰라도 누구 한명을 꼭 찝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알겠소. 당신들의 제안을 무시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옳지 않은 방법이었다는 것도 잊지 마시오.”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호텔로 돌아온 시간은 벌써 밤 열시가 넘어서였다. 거리는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그림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험악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이곳의 사람들은 저녁 해가 넘어가기 무섭게 각자의 보금자리로 허둥대며 돌아가 버렸다. 거대한 도심은 낯선 이방인 두 사람이 헤집고 다니는 발바닥 위에 놓여 있다.




“여행도 피곤했는데 정말 짜증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랬지?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이야.”


“어떻게 예상했어요?”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지. 적어도 현실에만 급급하게 사는 우리네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니까.”


“저 사람들에게 자료를 넘겨 줄꺼에요?”


“봐가며. 어차피 지금까지의 자료만으로도 초기 로봇은 완성 시킬 수 있을테니까.”


“그럼 초기 로봇만으로도 로봇 개발국의 지위를 얻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휴먼로봇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는 걸로 봐선 저들이 진정한 미래의 주인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네.”


“미안해요. 내가 괜히 미국에 가자고 졸라서 이런 일까지 생겼어요.”


“아냐, 저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거야.


오히려 외딴 이곳에서 만났으니까 두려움이 덜 하고 좋군.“


“테러를 가하지 않을까요?”


“아직은 아냐. 적어도 한국에서 내 프로젝트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까지는 저들이 나를 우호적으로 보호하려고 들꺼야.”


“저들이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어서 이번 프로젝트를 무시하라고 획책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운이지. 국운이라고 해야할까?”


“왜 미래를 준비하는데 소홀할까요?”


“현실도 벅찬 사람들이니까.”




샤워를 마친 나는 하얀 침대보를 걷어내고 반듯하게 누워있다. 샤워물 소리가 끝나면 숙도 뽀얗게 비누칠해진 몸을 씻어내고 내 품에 안겨 들 것이다. 이국에서의 첫날밤은 목청을 돋구어 비음 처리됐던 지난 날의 아픔들을 마음껏 질러댈 수 있다. 가녀린 허리를 안아봤던 일이 벌써 몇 달전이다. 어쩌면 몇 달을 참아온 댐의 수문이 열리면 질실할 정도로 쏟아져 내리는 물속에 나를 던지고 그 달뜬 목소리가 나를 녹여 버릴지도 모른다. 몸부림치며 달겨들 숙의 부딪힘에 나 또한 야한 밤을 위해 살짝 더러는 힘있게 안아 들이며 깊은 구멍 속에 나를 박아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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