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SF

가을의 축복 - 28부

본문

김미희 선생님이십니까?" 




"네. 제가 김미희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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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쁘시지 않으면 이리로 나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디로요?" 




"혹시 학생 중에 조경연이라고 아십니까?" 




"조경연요? 네 알아요. 그애가 근데???" 




"오시면 알게 됩니다. 여기 제일병원입니다." 




황망중에 걸려온 전화에서 조경연의 이름이 나왔다. 




지난 며칠간 학교에서 그의 흔적을 볼 수 없었던 미희는 미칠것 같은 심정으로 경연의 흔적을 찾았다. 




학적부를 몰래 뒤져 주소지로 찾아가 봤으나 집은 이미 폭탄을 맞은 것 같았고 집안의 상태로 보아 경연의 신상에 좋지 않은일이 벌어진 것은 분명했었다. 




그리고 경연의 일을 알만한 유재식 또한 학교를 무단 결근 하면서 우편으로 사직서만 날라 들었고 남편 김성남도 며칠 째 아무 연락이 없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이 한 시간 남아 있었으나 미희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서둘러 가방을 들고 옷가지를 챙겨든 미희가 교무실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 나오자 교무실에 남아 있던 몇 몇 선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미희가 뛰쳐나간 창문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거기 있었다. 


미치도록 그리웠던 사내도 거기 있었다. 


그 사랑이.... 그 사내가...잠잠히 누워 있었다. 




그가 내 쉬는 호흡이 거친 들판을 달려온 천리마의 호흡처럼 거칠었지만.... 




가슴과 한 팔을 붕대로 칭칭 동여메고 이불을 덮은 체 누워있는 사내는 자신이 그토록 보고싶던 얼굴을 갖고 있는 자신의 사랑이었다. 그는 지금 상처입은 모습으로 누워있지만 자신의 몸뚱이를 여자로 만들어준 진정한 사내였다. 




그가 그곳에 그렇게 누워 있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않으며 미희가 그의 손을 잡았다. 붕대로 감긴 팔은 몽둥이처럼 딱딱했으나 손엔 따스한 온기가 흘렀다. 




"언제부터....." 




침대 곁에서 묵묵히 서 있던 의사를 쳐다보며 미희가 물었다. 




"사흘 째 됩니다." 




"어떻게??" 




"병원 응급실 정문앞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누군가가 던져두고 갔습니다. " 




"???" 




"등과 팔, 그리고 허벅지 한 곳엔 칼을 맞아서 상처기 깊습니다. 그러나 피를 많이 흘려서 그렇지 치명상은 아닙니다. 그리고 한 팔은 부러졌습니다. " 




"피를 많이 흘렸는데??? " 




"급히 수혈을 해서 괜찮을 겁니다." 




"아~~ 네" 




"그러나 온 몸 곳곳이 멍 투성이인 것이 여러사람과 치열한 격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경찰이 몇 차례 찾아와서 물어도 말을 하지 않더군요. 혹시?" 




말을 끊은 의사가 미희의 얼굴을 처다보는 눈빛이 혹시 뭔가를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미희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의사가 계속 말을 이었다. 




"경찰이 그렇게 물어도 굳게 입을 다물고 아무 말이 없던 사람이...조금 전에 경찰이 돌아가자 ....자신의 이름을 대며 선생님께 연락을 해 달라고 하더군요." 




"아~~네에." 




" 그리고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 ~네." 




고개를 끄덕이는 미희를 보며 의사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조금 후면 깨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경찰이 또 올지 모르겠습니다. 환자는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 




"선생님이 원하시면 조용히 병원을 옮기시지요. 경찰이 계속 들락거리면...저희 병원도 그렇고....환자도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피했으면 하는 심정이 아닌가 합니다." 




"환자가 이런 상태인데...." 




"모든 응급 처방은 완벽합니다. 가족에게는 병원을 옮기신 다음에 선생님이 하시지요." 




의사는 빨리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입원환자가 들락거리는 병실에 경찰이 드나드는 것이 병원측으로서 불편하다는 것을 그는 노골적으로 암시했다. 




미희 자신도 그렇다. 




만약 경찰이 이 사건에 대하여 수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유재식과 자신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되면 결국 유재식과의 관계....경우에 따라서는 경연과 자신의 관계도 다 드러날 것이다. 




잠시 생각을 굳힌 미희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엠블런스를 부탁합니다." 




"엠블런스는 좀..." 




"왜요?" 




"행선지가 드러납니다." 




"아~ 예, 그럼 ..." 




"택시를 불러 드리지요." 




"알겠습니다.그럼 그렇게 하세요." 








몸을 추스리고 집으로 돌아온 정숙은 어디에서고 경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서 몸이 달았다. 




병원에 누워있는 자신을 안심시키고 훌쩍 나간 경연은 사흘 째 소식이 없었고 급한 마음에 서둘러 퇴원을 했으나 경연도 예령도 그 흔적이 없었다. 




예령은 그 놈들이 잡아갔고, 경연은 예령을 구하기 위해 그 놈들을 찾아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놈들에게 당했거나 잡혔다면 경찰에 알리는 것 보다는 빨리 영안에게 알리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급히 서럽장을 연 정숙이 누렇게 변색된 쪽지 하나를 찾았다. 주섬주섬 옷가지 몇 개를 챙긴 정숙은 사랍장 깊숙히 넣어 둔 저금 통장과 집문서 등을 챙긴 뒤 가방을 들고 대문을 나섰다. 






사방이 하얗게 덮힌 눈산 속에서 얼음 계곡 속으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은 투명하게 맑았다. 눈을 감은 체 깊은 호흡속으로 빠져려 했지만 호흡을 방해하는 뭔가가 영안의 심안을 괴롭혔다. 




다시 눈을 뜨고 길게 호흡을 내 쉰 영안은 더 이상 정진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산을 내려왔다. 사각거리며 밟히는 눈 밭에 점점히 영안의 발자국이 찍혔고 그 곁으로 나 있는 생소한 눈 발자국이 영안의 시야를 괴롭혔다. 




한 달음에 움막으로 돌아온 영안의 눈에 정숙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제서야 영안은 사흘 전 부터 자신의 정진을 괴롭히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유모가 여기까지 어인 일이오?" 




"들어가서 말씀 드릴께요." 




"그럽시다. 누추하지만 우선 추우니 들어오세요." 




거적데기가 하나 깔려 있는 움막 안이지만 움막은 예상외로 깔끔했다. 




깨끗하게 씻겨서 가지런히 얹혀있는 놋그릇들과 냄비 등이 영안의 세심함을 한 눈에 알게 해줬으며 앉은뱅이 책상을 사이로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들이 무술과 의약 책으로 보여 지금도 영안은 계속 의약과 무술에 심취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요?" 




작은 난로에 불을 지피고 초에 불을 붙인 뒤 자리에 앉은 영안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도련님 신상에 좋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는 듯 영안은 입술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노 마님께서 그렇게 부탁을 하셨는데....워낙 황망중에 생긴 일이라서...." 




"진정 하시고 차근차근히 설명을 해 보세요." 




"이미 어르신도 짐작을 하셨겠지만.....이 미친년이.....도련님을 섬기게 되었었습니다." 




"으~~음," 




"......." 




"그렇게 되리라고 짐작은 했었소. 그 아이....여기서 살 때 이미 홍살이 보였지요. 그러나 그 때문에?...." 




"아닙니다. 우연히 도련님이 어떤 여자애 하나를 깡패들로부터 구해주게 되었고......" 




"으~음" 




"그리고....그 애도 또 도련님을 섬기게 되었지요...그런데....그 여자 애 때문에....." 




눈을 감은 체 잠든 것 같은 모습을 한 영안에게 정숙은 그간에 있었던 집안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얘기했다. 




깡패들이 집안에 진입해서 정숙 자신이 겁탈 당하고 예령이 그들에게 끌려 갔으며 이를 알게된 경연이 정숙 자신을 병원이 입원시킨 뒤 지금 사흘이 지났으나 소식이 없다는 말을 하는 순간 영안의 큰 기침소리가 나왔고 살랑거리며 흔들리던 촛불은 이내 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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